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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02499 작성일 2019-02-25 17:00:39
3.1운동 당시 성결교회 역할 재조명 나선다

26일, 3.1절 100주년 기념예배 및 학술대회
‘일제의 식민통치와 한국성결교회’ 논문 발표

 

3.1절 100주년을 맞아 교계는 100주년 기념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며 3.1운동 정신 계승을 주장하고 있다. 

3.1운동 당시 한국교회는 여느 종교보다 가장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에 가담하고 국민들이 시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진 교회는 지역 곳곳에서 선언문 배포 및 재생산 과정에서 지역거점 혹은 연락망의 역할을 감당했다.

실제로 기독교인들의 3.1운동 합류도 타 종교보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1919년 4월말까지 투옥된 기독교 인구는 2,039명으로 불교와 천도교, 유교를 합한 1,516명보다 훨씬 많았다. 기독교인은 불과 인구의 1.5%에 불과했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사회적 영향력은 그 어떤 종교보다 컸다. 무엇보다 기독교인의 3.1운동 합류는 자유와 정의 수호자라는 기독교의 전통을 비폭력과 평화 시위로 실천했다는 점에 의미가 크다.

성결교회도 3.1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경성성서학원의 교수였던 이명직 목사와 재학생이었던 김승만, 정신여학교에 있던 백신영 전도사는 서울, 곽진근 전도사는 58세의 노령에도 경기도 철원에서 만세 운동을 이끌었다. 이 밖에 경남 밀양과 경북 영덕, 부산, 충남 천안, 경북 현풍, 평남 대동 등 전국 곳곳에서 성결교인들은 고향과 사역지에서 3.1운동에 적극 동참하였다. 성결인들이 앞장서 민족과 사회 문제를 극복하고 신앙과 행동의 일치를 위해 나선 것이다.

성결교회 초기 선교사였던 카우만도 3.1운동 당시 한국인들이 당한 핍박과 고난을 편지로 자세하게 밝혔다. 그는 1919년 3월 28일 미국에 보낸 편지에서 “독립선언서는 한국사람들에게 일제에 반대하여 도시와 지방에서 시위할 것을 독려하지만 폭력을 사용하지 말 것을 강조하면서, 일본인들이나 그들의 재산에 대한 가해는 또 다른 상해의 원인이 될 것을 말합니다. 이 충고는 예외 없이 지켜지면서, 시위는 만세를 외치는 것으로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자제력 없이 비무장 군중을 향해 칼과 총검을 사용하고, 나중에는 양떼와 같은 이들에게 권총과 소총을 발사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인들로 하여금 몽둥이와 도끼로 무장하여 한국인들을 공격하게 만들었습니다”라고 적으며 3.1운동의 실상을 해외에 적극 알렸다. 성결교회 지도자들과 교인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까지 함께 마음을 모아 대한민국의 독립을 간절히 바라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총회는 이런 신앙선배들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오는 2월 26일 신촌교회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예배 및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기념예배에서는 3.1운동 당시 성결교회의 역할을 재조명 하고, 당시의 감동을 되새길 예정이다. 예배 후에는 8명의 신학자들이 연구한 ‘일제의 식민통치와 한국성결교회’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윤성원 총회장은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100년 전 교회와 신앙의 선조가 남겨준 나라 사랑의 정신을 올바로 계승하고 다음세대에게 전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며 “나라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성결교회의 역할을 다시 기억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성결신문  http://www.keh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219